02화. 말하고 싶은 라떼 팀장, 듣기 싫은 MZ 주무관
"나 때는 말이야..."
산전수전 다 겪은 20년 차인 나조차도, 까마득한 신규 직원들과
마주 앉으면 가끔 입술 끝까지 차오르는 마법의 주문이다.
흔히 '라떼는 말이야'로 희화화되어 버린 이 말은,
이제 내뱉는 순간 조직 내에서 '꼰대'로 낙인찍히는
강력한 자폭 스위치가 되었다.

이쯤에서 챗GPT에게 슬쩍 물어보았다. 과연 꼰대란 무엇인가?
"주로 윗사람이나 연장자가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하여,
지위가 낮거나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 자신의 생각과 가치관을
일방적으로 강요하고 낡은 방식을 고집하는 사람을
비하하는 은어."
명쾌하다. 여기서 눈에 띄는 키워드는 '경험의 일반화'와
'일방적 강요'다.
공직 생활을 하다 보면 자신의 과거 화양연화에 갇혀 사는 팀장, 과장들을 숱하게 만난다.
돌이켜보면 내가 신규 직원이던 2005년 무렵, 공직사회는
일종의'야만의 시대'였다.
퇴근 직전 "오늘 끝나고 삼겹살에 소주나 한잔하자"는
과장님의 즉흥적인 번개 제안은 감히 거절할 수 없는
순화된 명령이자 성은(?)이었다.
삼겹살집 환풍기 아래서 쉴 새 없이 고기를 뒤집으며,
우리는 선배들의 무용담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야 했다.
"내가 동사무소 시절에 태풍 매미가 왔을 때 말이야..."로
시작되는 뻔한 레퍼토리를 무비판적으로 경청하고,
적당한 타이밍에 감탄사를 내뱉는 것은
조직 생활을 잘하기 위한 필수 덕목이었다.
그 시절 선배들의 경험담은 곧 법이자 진리였고,
그 야만적인 술자리 속에서 우리는 가스라이팅을 당하며
서서히 '미래의 꼰대'로 길러지고 있었다.
만약 피곤하다며 즉흥적인 술자리를 거부하는
간 큰 후배가 있다면, 다음 날 아침 싸늘한 눈초리와
"요즘 애들은 개인주의가 심해서 큰일이야"라는
비아냥을 고스란히 감수해야만 했다.
그렇다면 강산이 두 번 바뀐 지금은 어떠한가?

요즘 후배 직원들에게 업무 지시를 내릴 때,
윗선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이른바 '3요'의 역습이다.
"이걸요?", "제가요?", "왜요?"
과거의 팀장 세대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야말로 경악스러운 반문이다.
옛날 같았으면 "까라면 깔 것이지 말이 많아!"라며
결재판이 날아갔을 일이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세 마디는 무조건적인
반항이 아니다.
일의 목적과 타당성을 중시하고, 자신의 'R&R(역할과 책임)'이
명확하기를 바라는 젊은 세대의 지극히 합리적인 방어 기제다.
이런 좁혀지지 않는 평행선 속에서,
선배가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전수해 주겠다며
옛날 방식대로 '번개 모임'을 주도했다가는 큰일이 난다.
신규 직원들과 친해지려고 꺼낸 회심의 무용담이겠지만,
정작 동석한 MZ 주무관들의 단톡방에서는
"우리 팀장님 또 라떼 시전함 ㅋㅋㅋ",
"집에 가고 싶다..."라며 오징어 씹히듯
조리돌림을 당하고 있을 확률이 99%다.
선배 세대는 뼈아프게 인정해야 한다.
'라떼'를 경청하며 얌전하게 수긍하는 후배 직원을 바라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라는 사실을.
내 과거의 고생담을 털어놓아야만 후배와 유대감이
쌓일 것이라는 그 지독한 착각부터 당장 벗어 던져야 한다.
과거의 헌신을 인정받고 싶은 선배와,
합리성과 개인의 삶이 우선인 후배.
이 좁은 사무실 안에서 소리 없이 벌어지는
세대 전쟁 속에서 우리는 과연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토록 팽팽하고 답답한 공직 사회의 세대 갈등을 우리는 어떤 식으로 풀어내야 할까?
단순히 "서로 이해합시다"라는 교과서적인 대답 말고,
현장에서 경험을 바탕으로 고민해 온
'나름의 생존법'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서
본격적으로 몇가지 썰을 풀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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